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비에른 보리 (문단 편집) == 선수 소개 == [[지미 코너스]], [[존 매켄로]]와 함께 7,80년대 테니스 전성시대를 이끈 삼두마차로 불린다. 프로테니스를 인기 종목으로 부상시킨 주역이기도 하며 사상 처음 시즌 상금 100만 달러를 돌파하는 등 최고의 스타로 군림했다. 놀라운 점은 [[프랑스 오픈]]과 [[윔블던]]에서 모두 강했다는 것. 오픈 시대 이래로 두 번 이상 같은 해에 프랑스 오픈과 윔블던에서 모두 우승한 두 명의 선수 중 한 명[* 다른 선수로는 [[라파엘 나달]]이 [[2008년]]과 [[2010년]] 두 번 기록한 적 있다.][* 한 번 기록한 선수로는 전무후무한 [[그랜드슬램(테니스)|캘린더 이어 슬램]]을 한 로드 레이버, [[로저 페더러]] 등이 기록했다.]으로서 3년 연속 두 대회에서 모두 우승했다.[* 이것이 왜 특별한 기록인가 하면, 프랑스 오픈은 경기장 바닥이 클레이이고 윔블던은 잔디인데, 이 두 코트는 성격이 정 반대이기 때문이다. 보통 클레이에서 강한 선수는 잔디에서 약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성립하기 때문에, 이 두 메이저 대회를 한 해에 우승한다는 것은 한쪽 스타일에 편중되지 않은 진정한 강자임을 의미한다.] 보리의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에서 통산 11회나 우승한 선수라는 것 자체도 엄청난 기록인데, 그 이면을 살펴 보면, 1년에 4개뿐인 그랜드 슬램에서 하나의 대회는 사실상 불참하고, 나머지 하나의 대회에서는 홈 코트의 이점을 안고 있는 개최국 선수들과 싸워야 하는 불리한 조건에서도 불구하고 11회의 우승을 거뒀다는 게 무시무시하다. 테니스 선수도 사람인데 연말과 연초는 쉬어야 할 판국에, 교통편도 불편하고 멀기는 오지게 먼데다 시차도 큰 호주 오픈에는 데뷔 초인 [[1974년]]에 한 번 참가한 이후로는 출전하지 않았다. US 오픈 남자 단식에서는 준우승만 4번 있었는데 결승전 상대가 모두 미국 선수들로 두 번은 지미 코너스, 두 번은 존 매켄로였다. [[피트 샘프라스]]가 마지막 우승을 했을 때에도 말이 나왔듯이 US 오픈의 홈 코트 텃세는 유명했고, 그 와중에도 윔블던과 롤랑 가로스에서의 우승만으로도 11회를 채운 것이었다. 선수 생활 중에 호주 오픈에 거의 출전하지 않은 것이나 [[1981년]]에 여전히 연말 세계 랭킹 순위에서 4위를 기록할 정도로 뛰어난 성적을 올리고 있었음에도 노쇠화로 약간 기량 저하가 보인다는 스스로의 판단 하에 25살의 나이로 바로 대회 출전을 거의 포기하고 사실상 은퇴한 행동 등을 보면 요즘 기준으로 보면 프로 의식이 조금 부족한 선수였다고 볼 여지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어떤 면에선 철저한 자기 관리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현재와 달리 과거의 낭만을 상징하는 선수라고 볼 수도 있다. 보리의 경우 26세에 커리어를 사실상 접었다는 특이점 때문에 평가에서 이론의 여지가 상당히 큰데, 이론의 여지 없이 보리를 뛰어넘은 [[빅3]]와도 거의 비길 만 한 임팩트의 전성기를 보냈고 이에 따라 승률 등의 비율 성적과 그 전성기 동안의 퍼포먼스 면에서도 괄목할 만 하나 슬램 우승을 제외한 누적 업적 면에서는 부족함이 있다. 어찌되었든 어떤 평가 기준으로도 역대 남자 테니스 선수 중에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선수이며 대부분의 평가 기준에서 (오픈시대 이후) 역대 남자 테니스 선수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전설적인 선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